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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고 왕융 칭회장은 초등학교때 책가방과 신발도 못살 정도로 가난해서 학교를 맨발로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더 이상 학업을 잇지 못하고, 16세때 아버지로 부터 약간의 돈을 빌려 쌀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손님이 너무 없자 왕회장은 어떻게 하면 손님을 오게 할 수 있을까를 며칠 고민 하다가 당시로서는 획기적 이면서도 차별적인 서비스를 시작 했습니다.
예를 들어, 쌀에서 돌과 이물질을 깨끗이 골라내어 쌀의 질을 높였고, 쌀이 무거우니까 손님 집까지 직접 배달해 주었습니다. 쌀독이 지저분하면 깨끗이 청소해 주었고, 쌀을 부을 때도 쌀독 바닥 에 있던 기존의 쌀을 먼저 퍼내고 새쌀을 부은 뒤 그 위에 기존 쌀을 부어 주었습니다.
또 가난한 집부터 먼저 쌀을 배달해 주었고 돈은 나중에 갚도록 배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유익이 아닌 남들의 유익을 위해 열심히 섬기며 일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자수성가한 왕 회장은 나중에 대만 플라스틱 그룹을 세웠는데, 이 그룹은 9개 업체에 직원 수만 7만명에 이르고 그의 개인 재산은 무려 68억 달러에 달해 대만에서 두 번째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더 감동 적인 것은 왕 회장이 임종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한 말입니다
"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사회에 공헌 하는 것과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나는 내 재산을 모두 사회에 기부해서 사회발전과 복지에 기여 하려고 한다.
너희들도 충분히 이해해주고 동의해 주길 바란다”
왕 회장은 마지막 때도 내가 아닌 남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했던, 세상의 본이 되는 멋진 인생을 살았던 분입니다.
김춘호( With: 우리)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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