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락호’는 집안의 재산을 거덜 내는 난봉꾼을 의미합니다. 그 중 일제 식민지 때 안동에서 파락호로 이름을 날린 학봉 김성일 선생 종가의 13대 종손 김용환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노름을 매우 즐겼습니다. 안동 일대의 노름판은 어디든지 꼭 끼었고 마지막 베팅을 즐겨 해서 새벽에 모든 판돈을 걸고 승부를 던졌습니다. 그가 이렇게 노름으로 잃은 재산은 현 시세로 따지면 약200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외동딸이 시집갈 때, 시댁에서 장롱을 사 오라고 맡긴 돈까지 노름으로 탕진했습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었던 딸이 어쩔 수 없이 큰어머니가 쓰시던 헌 장롱을 가지고 가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때 주변의 조롱과 비난을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김용환은 행방된 다음 해인 194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놀라운 일이 드러 났습니다. 가산을 탕진한 줄 알았던 김용환이 만주에 독립자금을 댄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밝혀진 것입니다. 그가 노름으로 날렸다고 한 돈도 모두 만주에 독립자금으로 건너간 것이었습니다. 노름꾼으로 철저하게 위장한 삶을 살아야만 일제의 눈을 피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노름꾼, 주색잡기, 파락호라는 어떤 불명예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기 삶의 모든것을 바친 것입니다. 난봉꾼과 노름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김용환 선생이 꿈꾼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삶 전체를 바쳐서 이루려고 했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