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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절망의 표현을 문자적으로 듣지 않으시고, 너그럽고 깊은 가슴으로 들으신다.
깊은숨을 들이쉬듯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심연의 절망을 그대로 받으신다.
태어난지 한 달된 아기가 특별한 이유없이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그 아이의 어머니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 되었다.
아이는 죽어서 천에 싸여 있는데, 어머니는 애기가 젖 달라고 울었다며 가서 젖을 먹여야 한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목회자는 그 어머니에게 아이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천국의 위로가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알아요, 저도 그 것을 알아요!” 하면서 다시 울부짖었다.
천국의 위로를 거절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뭐라 말할 것인가?
이 어머니가 믿음으로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으로 보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슬픔의 먹구름이 잠시 하나님과 자신의 믿음을 가렸을 뿐, 그 어머니는 슬픔과 치유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깊은 슬픔이 사로잡은 동안 사람은 슬픔을 조절하지 못한다. 슬픔이 그 사람을 몰고 가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슬픔과 충격은 나선형의 반복 곡선을 그리며,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회복하게 된다.
슬픔과 충격이 꼭대기와 바닥을 오르내리면서, 한꺼번에 몰려오다가 물러가는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인간 감정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믿음으로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다 그칠 수 없을 것이다.
이성적 판단을 기준으로 인간의 감성을 다그치기만 하는 것은 강박적이다.
인간의 경험에서 마음과 감정을 빼 버린 것이 곧 강박적 신학이다.
하재성, 강박적인 그리스도인(이레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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