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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날, 한센병자 두 사람이 길가에서 떨고 있는 것을 본 서평은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한장 밖에 없는 담요를 둘로 갈라 각각 한 조각씩 덮어주고 돌봐주었다.
서 선교사는 포사이트 선교사와 함께 한센병자 근절 협회를 조직하여 이들을 수용하고 치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힘만으로는 벅찬 일이없다.
그래서 최흥종과 같이 야지마(실도)전남 도지사를 수차례 방문하여 원조를 호소했다.
그러나 도지사는 얘기를 듣지도 않았고, 그들이 찾아갈 때마다 귀찮게 여기며 자리를 피했다.
우가끼 총독에게도 몇 차례 진정서를 올렸으나 총독한테서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결국 한센병자 근절협회 회장이던 최흥종이 광주의 한센병자들을 모두 모아 서울까지 행진하기로 했다.
다 빠지고 없는 눈썹, 깊숙이 눌러쓴 낙은 벙거지 모자, 옆구리 한편에 매단 깡통, 지팡이에 의지한 썩어가는 몸...,
이런 행색의 한센병자 백오십여명을 이끌고 길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올라가는 길에 다른 지방의 한센병자들까지 합류하여 조선총독부에 도착했을 때는 사백명이 넘었다.
총독부는 발칵 뒤집혔다. 기겁을 한 우가끼 총독은, 최흥종의 요청대로 이미 있던 소록도의 한센병자 수용 시설을
대폭확장하기로 하였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센병자들을 수용하게 되었다.
서평이 한센병자, 일반환자, 간난한 자들을 구제했던 것에 대해서 스와인할트는
"서평은 1912년에 한국에 도착하여 1934년 6월 병고로 쓰러진 마지막 순간까지 한 번도 흔들림 없이
시간과 힘과 마음과 소유물 전체를 한국인들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 바치는 길을 걸었다"라고 썼다.
백춘성, [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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