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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정만 든 사이는 쉽게 파경으로 가지만 미운 정까지 함께 든 부부는 쉽사리 헤어지지 못합니다. ‘미운 정’이란 미운 행동속에서도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역경 속에서도 서로 자신의 편안함보다 소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랑입니다.
어떤 중년의 아내가 남편이 술과 도박으로 너무나 속을 썩이니까 헤어져야겠다고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왔습니다. 가족은 물론 친척과도 일체 연락을 끊고 여관에서 며칠을 혼자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중에 눌을 떴는데, 남편이 새벽에 술독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도 그런 아버지를 싫어해서 상대해 주지 않기에 새벽이면 자신이 그런 남편을 끌어안고 약도 먹여 주고 술국도 끓여 주던 생각이 났습니다. 갑자기 아무도 돌봐 주지 않을 철없는 남편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겨서 집으로 달려와 새벽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은 모두 자기들 방에서 곤히 자고 있고 남편 홀로 주방 바닥에서 배를 부여잡고 뒹굴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급히 남편을 일으켜 안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내 이 인간 때문에 죽기 전까지는 도망도 못 간다니까. 나 같은 바보 아니면 나 없이 하루도 못하는 이 인간을 누가 거두어 줄까! 이 인간이 내 팔자야.”
부부가 함께 살면서 서로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이러한 과정을 무수히 겪으며 사랑을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겨우 그런 연단과 성숙으로 들어가는 입구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부는 “죽음같이 강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8:6)
김남준, [서른 통](생명의 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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