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만 니의 책에서 본 예화로 기억합니다. 비탈진 논, 계단식 논이 있는데 제일 위쪽에 논을 가진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물어서 열심히 물을 퍼다 자기 논에 댔는데 다음 날 아침 나가 보니, 그 아래 논 사람이 밤에 물꼬를 탁 터 버린 겁니다. 그래서 물이 다 아래 논으로 흘러내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에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화를 참고서, 물꼬를 말고 다시 땀을 뻘뻘 흘려 자기 논에 물을 갖다 댄 겁니다. 다음 날 나가보니, 아래 논 사람이 또 그렇게 한 겁니다. 이 사람이 너무 화가 나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그 사람 논을 먼저 채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걸 채워주고 자기 논을 채웠더니 그 사람이 물꼬를 안 텄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감동스럽습니까?
그러나, 신앙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던진 질문은 이겁니다. “나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난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었습니까? 그 믿음, 그 실천할 믿음을 갖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답을 안 주시는 겁니다. 밤중에 일어나서 기도도 해 보고 기도원도 가 보고 별거 다 해봤는데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아닌 거였습니다. 그런데 난 하나님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을 외면할수 없었습니다. 그럼 어떡해야 합니까? 난 “이게 특별한 게 아니다”로 간 겁니다. “이게 특별할 것일 리가 없다. 아브라함만 한 게 아니다. 성경이 이걸 내세웠으면 여기에 믿음의 보편적인 원리가 들어 있을 것이다”이렇게 된 겁니다. “사람이 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로 결정적 근거가 바뀐 겁니다. “아브라함을 봐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런 항복을 받아 내셨는가?”로 그렇게 바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