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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레미야서에는 ‘돌아오다’라는 단어가 25차례 사용되는데, 그 중에서 3장과 4장에 20차례 사용됩니다.
죄를 범하고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갈 자격조차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패역한 자기 백성이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계십니다.
2.율법은 이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했을 경우, 첫 남편과 재혼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이스라엘은 첫 남편 하나님께 떠나 둘째 남편 우상을 섬겼으니 하나님께 돌아올 자격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행음의 정도가 ‘창녀의 낯’을 가졌다고 할 정도로 심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라 부르며 노여움 푸시기를 간구하지만, 그러면서도 온전한 회개를 하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고 욕심을 추구합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지만, 사실상 이들은 하나님께 돌아갈 자격조차 없습니다.
가끔 “하나님은 회개하면 다 받아주시니 우리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라는 식의 뻔뻔한 생각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 돌아갈 자격조차 없습니다.
3.예레미야의 사역은 요시야 왕 13년에 시작되었으므로 이 말씀은 비교적 예레미야의 사역 초기에 선포된 것입니다.
요시야 때는 이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행음, 곧 우상 숭배 때문에 망한 것을 유다는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저들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 할 뿐 아니라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차라리 이스라엘이 유다보다 더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범한 자들이 징께 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라는 외침에 겉으로만 뉘우치는 척하면서 계속 죄를 범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욱 가증할 뿐입니다.
우리가 교훈을 받고서도 변화하지 않고, 눈물만 흘릴 뿐 삶의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이러한 책망을 받아도 마땅합니다.
4.여기서 묘한 말씀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긍휼을 선포하며 돌아와 죄를 자복하라는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북 이스라엘은 BC722년에 망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사역을 시작한 요시야왕 13년(BC626년)을 기준으로 해도 거의 100년 전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을 자식이라 부르기도 하시고, ’내가 너희 남편이라‘고도 하시며 합당한 목자들을 주어 번성케 하겠다고 하십니다.
돌아올 사람이 거의 없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회복을 선언하시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되어 예루살렘에 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돌아갈 자격이 전혀 없는 자들에게 회복을 말씀하시고, 돌아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전심으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용서는 법으로도, 도덕으로도, 합리성으로도 설명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처벌을 당해야 할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를 지은 백성에게 돌아오라 부르시며 회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런 은혜의 말씀을 들었다면 주님께 돌아가 회개하며 죄악에 거하지 않겠노라 약속하며 결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을 떠난 삶의 모습이 있습니까? 돌아오십시오.
5.오늘의 찬양 / 여호와께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