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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스라엘은 이방 민족들의 우상 종교로 인해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성막이나 성전은 우상의 신전에 비교할 때 작고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화려하고 거대한 신전이나 신상에 압도되어 이방 종교에 빠지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공동체는 유월절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우상들은 모두 헛것이며,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심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2. 115편은 오직 하나님 만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함을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영광은 사람에게 돌려질 수 없으며, 인자하고 진실하신 하나님의 이름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사람이 영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함으로써 사람이 만든 신상이나 선전도 영광을 받을 수 없다는 선포를 준비한 것입니다.
시인이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모든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있느냐?”라고 묻는 상황입니다.(2절)
즉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전이나 형상으로 당신을 계시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상 숭배자들은 “너희 신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했는데,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압제를 당하기라도 하면 그 조롱과 공격은 더욱 심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하늘에 계시며,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신다는 선포는 우리 신앙의 근간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형상에 구속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 무엇이 대단해 보이더라도 그것에 압도되거나 끄려들어 가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3.시인은 거대하고 화려한 우상과 신전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선언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방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전과 비교하면 작고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비웃었지만,
시인은 오히려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우상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4절)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형상을 따라 입, 눈, 귀 코, 손, 발, 목구멍 등을 만들기는 했는데,
전혀 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금속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이는 아무리 큰 금덩어리를 갖다 놓았다 해도 그것이 도대체 무슨 기능을 할 수 있느냐는 조롱입니다.
시인은 여기에 덧붙여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자들은 다 ‘그와 같다’고 노래합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마치 죽은 자와 같다는 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 있지만, 죽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4.현대인들도 생각보다 많은 우상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 어떤 대상도 생명을 주지 못하는데도 그것이 자기를 지켜 주고 살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뢰하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그 우상들이 좋아 보이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애쓰면서 헛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찾고 구하고 따라야 할 때 상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뿐입니다.
5.오늘의 찬양 / 온 땅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