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의 대적들은 어떻게든 교회가 번성하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수단은 동원했으며, 폭력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교회는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번성해 갔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처럼 죽기를 원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교회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2.스데반은 설교가 끝나자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이 찌려 이를 갈았습니다.
오순절날 3천명 회개할 때에 마음의 찔림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3천명의 회심자를 얻었을 때 보다 더 큰 영광이 스데반에게 임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처럼 성 밖으로 내쳐졌고, 돌로 침을 당했습니다.(57-58)
인간의 눈으로는 비참해 보일 수 있지만 스데반의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사실상 스데반은 “작은 예수‘였습니다. 역설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며 제자들을 남기셨던 것처럼, 스데반도 죽음을 통해 사울(바울)이라는 제자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58절)
3.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라고 말씀하시며 숨지셨던 것처럼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59절)라고 부르짖고 있으며, 예수님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스데반은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60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결과로 일어난 일마저 동일합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오히려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8:1)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지만, 대략 7년 동안 예루살렘에만 복음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음으로써 열매를 맺어 제2, 제3의 예수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4.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소망은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처럼 죽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심는 것은 헛되지 않습니다. 기도의 밀알, 말씀순종의 밀알, 삶의 밀알을 심으십시오.